연극 <반려가전 A/S 합니다> 관람 후기
2024.10.24. 창작 초연으로 무대에 오른 극인데, 관련한 정보는 아래의 링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가장 먼저 정보를 접한 곳은 텀블벅.
펀딩 종료 이후에 잔여 좌석 판매를 위해서 인터파크에서도 좌석이 판매 되었다.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15004
우선 관심을 두게 된 이유 자체는 다른 극에서 대단히 눈여겨 보았던 배우님이 무대에 오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여성만 무대에 오른다는 점과 소재 자체가 흥미로워서 펀딩을 통해서 얼른 극을 예매하게 되었다.
창작 초연에 대한 불신은 뮤지컬 <파과>로 인해서 대단히 뿌리 깊게 있었으나, (이에 관련한 후기도 올리겠다. 오블완 끝나고도 후기를 계속 올릴 수 있을 만큼 트위터에 쌓인 후기 한가득...) 소극장 연극들을 하나씩 보면서 신중하게 완성된 극이 그 완성도와 만족도 그리고 생각할 지점들이 얼마나 많은지 느낄 수 있었기에 예매에 망설임은 없었다.
현재 극 러닝은 종료된 상태이나, 극이 초반부터 대단히 흥행하여, 마지막 공연이 올라오기 전부터 계속 매진되었다고 안다. 반드시 다시, 더 좋은 관극 환경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후기를 남겨 본다.
나는 10월 24일 첫 공연과 10월 27일 마지막 공연을 관람했다.
1.
희망, 그 자체의 이야기.
연극 <반려가전 A/S 합니다> 가 전하는 메시지는 종래에는 희망으로 귀결된다.
아무리 절망적이더라도. 당장 내일, 세상이 전부 쓸려 내려가서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오늘 살아 있으니까, 우리는 살아 있음에 힘내서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서로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니 세상이 아무리 ☠️ 어제와 같은 끔찍한 뉴스에 고꾸라져서 술독에 빠지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조금만 더 힘내서 함께 살아보자는 메시지를 따듯하게 전한다.
2.
약자, 소수자 그리고 현실의 실재적인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이는 이야기.
연극 <반려가전 A/S 합니다> 에서는 성 소수자도 나오고 돈이 없어서 기본적인 살 공간조차 마련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기후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사용하며, 현재에 실존하나,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는 현상을 무대 위에 그대로 드러낸다.
문학. 문화. 창작. 컨텐츠. 나는 컨텐츠를 창작하는 사람으로, 어떤 컨텐츠를 창작해야 하는가, 고민할 때가 정말 많다. 왜냐하면 이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이 컨텐츠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컨텐츠에 무엇을 담을지 정말 고민해야 하는데, 완성된 컨텐츠에 현재가, 현대가 지우려고 하는 위기와 약자를 함께 그려서 온전히 보인다는 점이 연극 <반려가전 A/S 합니다>의 인상적인 요소 중 한 가지이기도 했다.
3.
한 사람으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보편적인 인류애로 나아가는 따듯한 이야기.
앞서 소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연극 <반려가전 A/S 합니다> 의 좋은 점을 말했는데, 이 연극에서는 이를 풀어내는 방식 또한 매우 따듯해서, 이 점 또한 꼭 짚고 싶다.
컨텐츠를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컨텐츠에 담을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 점을 고민한다고 말한 바가 있다. 그와 더불어서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는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전달할 때의 주의 사항이다. 예를 들면, 최근 뮤지컬 <리지>에서 대단히 자극적인 소재와 극 전체적으로 관객들이 주의할만한 요소가 곳곳에 있는데도 제작사가 해당 사항을 사전에 앞서 공지하지 않은 탓에, 나뿐만 아니라 정보 없이 갔던 관객들이 몹시 당황하기도 했었다. 제작사 쇼노트는 극이 러닝된 한참 후에야 공지를 올리면서 뮤지컬 <리지>에 트리거 워닝 요소가 있다고 알렸는데, 참으로 무책임하다는 생각이었다.
고민 끝에 탄생한 극은 약자를 혐오하거나 조롱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함으로써 보는 관객을 웃기거나 울릴 수 있다. 감동을 전하고 극에 담은 메시지를 그대로 전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서 잔인하게 표현하거나, 누군가를 짓밟으며 느끼는 자기 만족적 우월감을 통해서 인물이 완성되거나 나아가는 게 아니라, 사람 사이의 연대와 위로, 응원과 지지를 통해서 오늘의 내가 내일의 우리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현실의 끔찍함에 지친 우리를 극은 따듯하게 위로한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소재들을 짧은 극 속에 가득 담아서 관객에게 보여 준다. 웃음과 풍자 속 날카로운 비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결국에는 따듯한 감동을 통해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는 모두 분리된 개인이지만, 사실은 내 옆에 사람이 있고, 우리는 그들과 함께 내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여자만 나와서 행복한데, 심지어 전하는 메시지가 따듯하고 내용까지 꽉 찬 극을 만나서 참 좋았다. 배우님들의 연기가 두 시간 내내 관객들을 휘어잡는 동안 웃다가 울다가 정신없이 즐기다 보면, 어느새 미래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그래서 현재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쥘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멋진 극.
살아지더라. 살게 되더라. 삶. 하루하루 우리가 버티는 이 시간이 무용하고, 헛된 것 같아도. 뒤돌아보면 결국에는 지금의 나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내 옆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 내고 있음을 되새기게 하는 뜻깊은 작품이었다.
앞서, 관극 환경이 열악했다고 말했다. 좌석 사진을 촬영하지는 않았는데, 좀 특이한 좌석이었다. 방석이 온전히 허벅지를 다 받치지 못하는 구조였다. 시야는 다닌 여러 극장 중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쾌적했으나, 좌석이 불편해서 조금 곤란했던 극장이었다. (성미산마을극장)
하지만 극이 정말 의미 깊었기에 재차 관람하며 나름대로는 트위터에서 더 많은 사람이 이 극을 관람하도록 열심히 후기도 남겼었다.
가슴 절절한 대사도 좋았다. 비웃음 터지면서도 마냥 편히 웃을 수만은 없는 극 중의 영상도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었다. 배우님의 연기 또한 어느 하나 아쉽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한데 어우러지도록 완성한 연출이 좋았다. 이렇게 하나하나 짚을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 보면 그렇다는 생각이다.
이 극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게 노력한 모든 사람들에게 참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더라.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극이더라. 극을 보고 나오는 길에, 사람이 그렇게 되더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메시지를 이렇게 뜻 깊게 전달하기 위해서. 오래 고민한 흔적을. 대본집을 받기 전부터, 무대에서 이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도록 깊은 고민을 통해서 완성된 극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어서 참 기뻤다.
그래서 혹시 여기까지 연극 <반려가전 A/S 합니다> 제작자 분들이 찾아와 주신다면. 고맙습니다.극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게 노력해 주셔서, 극에 이토록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서 따듯하게 완성해 주셔서 참 감사해요.
그러니까 꼭 다음 공연 올려 주셔야 해요! 또 무대에서 뵐게요!
아효. 하고 싶은 얘기를 가득 담아서 모두 쓸 수 있으니 참 좋다.
글 쓰는 일을 참 좋아해서, 업으로도 삼고 있다. 그런데 그로도 부족했는지, 결국에는 내 생각을 담아서 알리고자 연극과 뮤지컬 후기를 써서 좋은 극을 알리고자 (+ 별로인 극을 알리고자) 트위터 계정도 열심히 운영하다가, 패악적인 트위터의 정책 변화를 못 이겨서 이사할 곳을 둘리둘리 찾다가...!
드디어 찾았다, 나의 안식처.
길게 쓰니, 마음껏 쓰니 참 행복하다.
관극을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문화를 향유하며 생각을 담담히 나누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많은 관심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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