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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추상을 넘어서 해체로, 이것이 현대의 우리 음악이다💘 | 2026 남산 국악위크 <Vocal Space '조각눈'>

by 뮤떤여자 2026. 6. 10.



서울남산국악당.서울돈화문국악당의 시민 리뷰단으로 참여하여 남긴 후기!



전통이 전통이라는 이름에 얽매여 버린 작금의 현실이 아쉽다고는 생각하면서도, 그럼 어떻게 '답습'을 넘어서 진짜 현대의 우리 음악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요즘 종종 하는 편이다.

여러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들을 많이 만나 보면서 내 생각의 한계가 부서지기도 하고, 감탄을 금하지 못하며 박수로 찬사를 보내는 공연을 만나기도 여러 번!

드디어 진짜 전통을 넘어서, 현대 사회에 우리가 우리 음악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그 극한의 한계를 시험하는 아티스트들을 만났다.

바로 리퀴드 사운드(LIQUID SOUND)‼️



서울남산.돈화문국악당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정보만으로는 사실 무슨 공연인지 감을 잡기가 정말 어려웠다.
https://sgtt.kr/program/detail/7169

실험적인 공연인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무대 위에서 어우러지게 될까.

심지어 관객이 무대에 함께 앉아서 공연의 또 다른 일부가 되는 무대라는 소식에 궁금증만 더 커졌다.

그런데 나오면서, 바로 두 시간 뒤에 있는 오후 공연까지 또 보고 싶어지는, 그토록 어마무시한 공연을 만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리퀴드 사운드라는 아티스트가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그룹임은 인지하고 있었다. 거리 예술 축제 등에도 자주 참여하고 프랑스 등 유럽, 아시아에서 정말 활발히 활동하는 그룹임은 알았지만, 그래서 '어떤' 공연이 이어질지는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공연에 임하게 되었다.



무대를 관객과 함께 쓰는 만큼, 무대에는 '방석석'과 '의자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방석석'에 앉으면 아티스트의 소리와 퍼포먼스를 진짜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의자석'은 무대에 어우러지는 일부이면서도 일단은 '방석석'에 비해서는 외곽으로 빠져 있는 자리이기는 했다.

관절 이슈로 의자석에 앉기는 했지만, 만약 관절 여건이 좋았다면 방석석에서 조금 더 재미있고 역동적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본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안에 설치된 세 개의 무대 (퍼포머는 세 명이었고, 사운드를 담당한 분이 가운데에 앉아서 음향, 음량 등을 조절하셨다.) 에 둔 스피커를 통해서 (카세트 테이프 오디오처럼 생겼으나 실제로 음원은 USB에 들어 있었다) '각기 다른 소리'가 나고 있었다.

무대 안에 설치된 세 개의 무대에 둔 작은 오디오에서 세 개의 소리가 흘러나왔다는 뜻이다. 공간은 하나인데, 세 개의 소리가 어우러져 '구분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소리'가 되어 버린 소리가 무대에 퍼져 있었다.

그런데 본 공연 시작 10분 전부터 퍼포머 세 명이 모두 나와서 역시 '각기 다른 소리'를 무대 곳곳에서 들려주기 시작했다.

공연 시작 전인 만큼 잠깐 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퍼포머가 무대에 올라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미 무대에 퍼진 소리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소리'가 더해진 것을 곧장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완전히 처음 보는, 그냥 단어를 넘어서 정말 '색다른' 공연들이 이어졌다.

퍼포머들은 각자 맡은 소리의 어떤 특성이 있다는 것처럼 누군가는 앉아서 소리를 하고, 누구는 서서 소리를 하고, 누군가는 조금 더 감정을 나누는 소리를 했다. 이마저도 신기했는데, 그걸 계속 무대 전체에 인사를 하면서, 마치 흥을 일깨워서 본 무대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는 것처럼 소리들을 이어 나갔다.

본 공연 시작 전, 총 여섯 개의 소리가 무대를 장악했고, 웬만큼 소리를 잘 구분하는 나도 이 분이 하는 소리가 맞는지, 오디오에서 나오는 건지 점차 헷갈리기 시작하더라.

장자가 나비인 건지, 나비가 장자인 건지. '원본'과 '복제'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본 공연에 들어가게 되었다.



공연을 찾아와 준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곡으로 무대가 열렸다.

진짜 환영한다고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무대를 뛰어다니는데, 시작이 너무나도 천진해서 그냥 웃음이 나더라.

하지만 여기서도 '하나'가 되어 버린, 각기 다른 소리를 하지만, 하나가 되어서 너무너무 구분해서 듣고 싶은, 하지만 그마저도 공연의 일부이기에 열심히 즐겼던 식으로 퍼포머들이 소리를 했다.

한 명의 퍼포머가 인사를 맡았고 (서울남산국악당을 찾아와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면서... 이런 식의 긴 멘트를 혼자 하셨다) 나머지 두 명이 '어서오세요'를 엄청 활기차게 하는데, '어서오세요'의 짧고 간결하고 분명한, 그래서 확 귀에 꽂히는 소리가 우세해서 인사말이 잘 안 들렸는데, 이게 의도였던 것 같다.

정말 흥미로운 인트로였고, 이와 같은 구성이 어떻게 본다면 공연 전체에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기도 했다.

공연 속 가사들은 소위 '정가'라고 하는 국악의 한 분류의 곡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등의 가사나 새 타령 등 학교에서 한 번 쯤 들어봤을 법한 가락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익숙한 가락이 아니다. 이 가락들을 모두 분절시켜서 완전히 새롭게 조합한 것이다.

새 타령을 하다가 수궁가 한 대목이 나오기도 하고, 수궁가 한 대목에 이어서 춘향가와 심청가가 이어지기도 했다. 춘향가를 하면서 새 소리를 내기도 했고 세 명의 퍼포머가 각기 다른 소리를 하면서 무대를 휘젓기도 했다.

처음에는 '소리가 추상 예술이 될 수 있구나' 감탄했다. 하지만 듣다 보니, 추상을 넘어서 '현대적인 해체'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을 완전히 해체해 버린 다음에, 현대적인 방식으로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울림을 선사할 수 있도록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결합을 했다는 것이다.

짜임새 있는 공연, 의미 있는 공연은 많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진짜 오래간만이었다.

리퀴드 사운드의 2026 조각눈 공연은 진짜 천재가 만든 공연이었다. 기획, 연출부터 해서 완벽한 퍼포먼스까지. 천재가 천재를 만나서 완성된 천재적인 무대였다.



처음 무대에 설치해 두었던 오디오를 활용한 퍼포먼스도 있었다. 그 오디오를 통해서 과거 명창이 남긴 소리를 재생한다.
그리고 그 소리를 무대 위에서 퍼포머가 재현했다.

한 대목 길게 이어 가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몇 소절, 한 단어 등으로 짧게 짧게 자르기 시작했다.

복제의 복제, 원본의 가치를 되짚게 하는 구성이어서 정말 흥미롭게 관찰하며 무대를 관람했다.

전통의 가치가 무엇인가. 과거에 박제한 어떤 '기록'을 현대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중요한 기술인가? 그렇지 않다. 현재와, 현대와, 객석을 메운 현대인들과 눈 맞추고 소통하면서 무대를 완성하는 것이 오히려 전통으로서 훨씬 더 의미 있는 울림을 선사하는 것이 아닌가.

오랜 고민 끝에 스스로 결론을 내린 것처럼 확고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실존하는 전통, 실재해야 할 이유와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정말 멋진 무대였다.

우리가 아는, 또는 모르는 대목들을 짜깁기했는데, 완전히 새로운 것이 창조되어 버린 놀라운 경험을 런 타임 내내 할 수 있어서 참으로 기뻤다.

개인적으로 또 좋았던 부분 중 하나는 여태 보았던 공연 대부분에서 거의 없던 경우였는데, 오디오를 스테레오로 썼던 점도 참 좋았다.

소리의 방향에 따라서 무대와 객석에 퍼지는 울림이 각기 달라진다. 어떤 의도를 담아서 활용하면 더욱더 신비로움이나 어떤 특정한 감정을 줄 수 있기도 하다.

사운드 활용을 진짜 잘한다는 생각이었다.

공연 중간에 퍼포머들의 마이크 음량을 없애고 진짜 목소리만 사용한 구간도 있었는데, 그런 식의 음향 활용 기법 또한 놀라웠다.

무대에서 마이크가 꺼지면 보통 사고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대단한 연출이라고 생각하며 공연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었다.

같은 대목을 중얼거리는 것처럼, 공포 영화에서 귀신이 등장할 때 속닥거리는 것처럼 소화한 구간도 있었는데, 1) 암전 2) 관객 뒤편에서 그렇게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로 속닥거리면서 공포스러운, 기괴함을 자아내는 방식 또한 놀라웠다.




좋은 공연을 만나면 언제나 여운이 깊게 남는데 리퀴드 사운드의 조각눈 공연은 정말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무대에서 또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