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정말 많은 공연이 있고 30년 넘게 직간접적으로 경험을 쌓아 왔던 만큼, 제목이나 시놉시스 등을 보면 공연이 어떻게 진행될지 대체로 감이 온다. 불투명하더라도 구조가 어떻게 짜일지 짐작 가능하달까.
그런데 정말... 처음으로 하나도 짐작하지 못했고 그 덕분에 이 세상에서 가장 창발적인 공연을 접하게 되었다‼️
관객과의 대화가 공연 이후 짧은 휴식 시간 이후에 이어졌는데,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멋진 공연이었다.
아래 링크에서 공연 관련해서 출연진 및 세부 프로그램 내용을 먼저 만나 볼 수 있다.
https://sgtt.kr/program/detail/7005
서울남산·돈화문국악당 통합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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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자의 언어로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공연의 인트로는 각기 다른 색상, 다른 종류의 옷을 입은 배우님들이 한 명씩 등장해서 객석에 인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집업. 저지. 윈드 재킷. 상의뿐만 아니라 바지도 각양각색이었다. 컬러감을 맞추기 위해서 신발은 컨버스류의 신발로 통일되어 있었으나, 배우님들은 서로 다른 색상의 서로 다른 종류의 옷을 입고 등장해서 각자의 언어로 인사했다.

처음 뮤지컬을 접했던 때가 생각난다. 뮤지컬 <레드북>이었는데, 커튼콜이라는 문화나 배우님마다 인사하는 방식이 달랐던 점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춤이 되고 말이 되고> (이후, 춤말) 공연에서는 각 배우가 커튼콜을 하는 느낌으로 인사하면서 무대 위의 작은 원형 무대를 누볐다.
엔딩으로 인트로가 시작한다는 점도 무척 흥미로웠다. 수미상관. 그렇게까지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생각해 본다면 배우가 공연 중에서 관객에게 가장 많은 박수를 받으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힘을 받을 수 있도록 공연을 시작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이스 브레이킹, 시작에서부터 객석과 무대의 벽을 낮춰서 관객들이 무대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더불어 서로 다른 색상,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무지개 색상의 옷을 하나씩 입은 인물들로 ‘다름’을 손쉽게 무대 위에 구현했다.
무대 위의 작은 원형 무대를 통해서 지구를 표현하면서 전 세계의 다른 국적과 인종을 1차적으로 짚었다. 그리고 무대에 오른 출연진을 통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담아 내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너무나 다양한 ‘다름’의 영역을 한 번에 표현해 냈다는 점에서 몹시 인상적이었다.
2. 여태 본 적 없는 자기 소개의 시간
무대의 구성원들이 무대에서 ‘자기’ 소개를 하지는 않는다. ‘배역’이 무엇인지 독백 등으로 설명하는 경우는 있더라도, ‘무대 위의 “실제” 나’를 말하는 경우는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본 극에서는.
그래서 배우님들이 ‘자기’ 언어로 자신을 소개할 때 조금 놀랐다. 설명을 모두 기억해야 극을 원활히 관람할 수 있는 것인가. 약간 당혹감을 느끼면서 자기 소개 내용을 외우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외우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당혹감과는 다르게 이 시간 자체는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무대에 오른 배우님들을 본다. 배우님의 과거에 무엇이 있는지, ‘팬심’으로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그밖에는 크게 관심 갖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배우님이 얼마나 열연하는지를 볼 뿐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현재에 다다르기까지 거친 ‘과거’와 시간 속에서 쌓은 ‘경험’이 있다. 따라서 배우님의 이야기를 짧게라도 들을 수 있게 됨으로써 1) 무대의 배우와 객석의 관객이라는 장벽을 넘어서 사람 대 사람으로 배우님을 이해할 기회가 생기고 2) 무대 위의 이야기가 빚는 역경과 카타르시스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모든 공연이 이와 같은 포맷으로 운영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춤말에서는 대단히 적절한 방식이었다.
3. 용은 귀가 없대. 알고 있었어?
우리가 익히 아는 어떤 존재이지만, 우리가 정말 몰랐던 사실을 가져와서 무대로 올린다는 발상은 정말 천재적이었다.
십이지에도 존재하고 전통적인 콘텐츠에서부터 현대적인 콘텐츠까지 자주 쓰이는 ‘용’이라는 소재에서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인 ‘용은 귀가 없다’는 사실로 만들어진 무대는 수어로 시작해서 배우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완성되었다.
이와 같은 소재 활용을 통해서 이야기의 이해 난이도를 낮추고 충돌과 갈등 속에서 변화하는 배역이 느끼는 희열을 배가하면서 굉장히 몰입할 수 있었다.
모두가 하나의 방식으로만 살아야 하는 게 아니다. 각자의 상황이나 여건에 맞는 삶의 방식이 있다. 귀가 없는 용에게는 용의 삶이 있다. 귀가 있는 다른 동물들은 귀가 없는 용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방식을 강요’하는데, 오로지 그 방향에서만 용이 행복을 찾을 수 있지는 않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우 감동하면서 봤다🥹
4. 소리가 없는 세상
네 번째 무대에서는 김수영 시인의 ‘풀’을 수어와 몸짓으로 담아 냈다.
무대 시작에서 소리가 없이 수어와 몸짓으로만 체감상 5분 이상 공연이 이어졌다.
이때 정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농인의 삶을 찰나이지만 적나라하게 마주하면서, 1) 이 세상에 실제로 없는 ‘정상’의 허황된 범주 바깥에서 어떤 이유로든 차별 받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했고 2) 수어와 움직임이 담은, 내가 아는 언어 바깥의 언어가 무엇을 표현하는지 고심했으며 3) 무대에서 소리가 사라지면서 객석에서 벌어지는 몇 개의 소리들에 집중력을 잃었다.
농인들도 청인들과의 대화에서 수도 없는 소외감을 느꼈겠지. 여기가 다다른 생각의 마지막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입술 모양이 보이지 않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면 웃는지, 화를 내는지 보이지 않는다. 농인의 입장에서는 그냥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소리와 함께 엮인 이후의 무대도 좋았지만, 정말 생각할 지점이 많았던 네 번째 무대의 인트로였다.

5. ⚠️중요⚠️ 이 공연은 농인이 청인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만든 공연이 아니다.
춤말은 사실… 보던 중에 속된 말로 개큰감동을 받은 공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연을 잘 이해했으면 좋겠다.
오로지 내 방식이 옳지는 않겠으나 편협하게 극을 관람해서는 안 되기에 생각을 글로 정리해 보았다.
춤말은 농인이 소리를 이해하는 방식을, 농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농인의 경험과 삶 속에서 꺼내서 만든 무대이다.
농인과 청인이 원활히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농인의 삶을 청인더러 이해하라고 만든 무대가 아니다. 농인이 스스로 완성할 수 있는 이야기를 농인의 언어와 방식으로 만들어서 올린 무대이다.
이걸 청인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거나 없다는 식으로 평가할 수 없다. 옳지도 않고.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공연을 사전에 배운 농인의 언어로 이해하고 움직임에 담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찰하면 된다.
누구나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스스로 삶 속에서 펼치는 노력은 크든 작든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소중하다.
이것이 ‘소리를 보여 주는 사람들’과 ‘천하제일탈공작소’ 배우님들이 무대 위에서 펼치고 싶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서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 - 나이 - 국적 - 성별 - 정체성과 같은 지점들을 넘어서서 함께 어우러져서 진정으로 공감하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커튼콜 직후의 관객들과 어우러지는 시간에 담지 않았을까.
결론은. 우리는 각자 상대방에게 존재 가치를 설득해야 존립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 자체로 존재하고 그렇기에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어울려서 잘 살아가면 된다.
그냥. 그뿐이다.
6. 관객과의 대화
매 회차 공연 직후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지는 공연 역시 춤말이 처음이었다. 놓친 것이 진심으로 아쉽다.
공연 바깥에서 이 무대를 올리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있었고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관객의 시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무대를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한 배우님들이나 관계자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면 두 배 더 큰 감동을 받았으리라 확신한다.
컨디션 난조로 관객과의 대화는 듣지 못했지만, 포스팅 시간 기준 한 시간 후에 시작되는 공연 1회차가 남아 있다.
제발‼️
부디 꼭 무대에서 극을 만나 보기를 바란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많은 ‘나’와 그리하여 ‘우리’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뜻깊은 극이다.

7. INTER-ACTION 무대와 관객의 구분을 넘어서 함께 상호 작용
앞서 커튼콜 직후 관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이 있었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전부터 관객들은 무대 위의 배우들과, 어쩌면 함께 공연하고 있었다.
장애, 비장애를 넘어서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손으로 완성하는 언어를 관객들이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이 지점이 몹시 놀라워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시선을 나누면서 같은 언어로 교감하려는 무대와 객석의 노력이, 이 공연이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례가 아닐까 싶다.
그 이후에는 거리에서 펼쳐지는 탈춤의 끝자락처럼 무대의 배우님들과 객석의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함께 박수 치고 춤을 추면서 흥겹게 무대를 맺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참 짜임새 있고 의미 깊었던 공연이었다.
<춤이 되고 말이 되고> 이와 같은 공연이 부디 널리 퍼져 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서울남산국악당.서울돈화문국악당의 시민 리뷰단으로 참여하여 남긴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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