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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싸우는 여자들의 소리? 그게 무슨 소리인데?

by 뮤떤여자 2024. 11. 23.

2024.05.08. 여설뎐: 싸우는 여자들의 소리, 이화SORI <솔의 기억> 총평
풍성하고 아름다운 소리의 향연에 과거부터 현재를 관통하는 시대의 아픔을 녹인 우리만의 특별한 극, 그래서 꼭 다시 무대에서 만나길 소망하는 극.

 

내가 너무 사진을 안 찍어서 남은 사진이 이런 사진... 사진도 아니고 캡처...뿐인 경우도 많다ㅠㅠ


1.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시작된 극은 2000년대인 현재까지 다다른다.
긴 시대를 하나의 무대에서 보이기 위해서, 시간을 어떻게 교차시킬 것이냐. 쉽지 않은 문제를 이 극에서는 교차하는 시간을 도입부에서 관객에게 동시에 보여 주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극의 제목에 명시되었으나, 숨겨진 인물. 그리고 또 다른 화자와 인물들을 통해서, 과거를 찾아 나가는 방식으로 극이 진행됨을 알려준다. 초반에는 이해가 조금 어려웠으나, 극 말미에서는 정말 세련된 방식으로 극을 시작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을 그대로 관통한다. 그러나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이 시기의 잘못은 당연하게도 2024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까지 연결되고 있다.

과거의 이야기를 과거에서 맺지 않고, 현재로 연결하여 세대 간의 연대와 아픔의 이해를 그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더불어, 당시의 시대상을 극 속에서 소리와 한정된 소품들로도 개성 있게 살려 내었다는 점이 무대의 몰입도를 높였다.

 

3. 앞서 말한 내용에 연결되는 부분인데, 극에서 전체적으로 극히 한정된 무대 환경에서 빛과 소품 및 배우님들의 열연을 통해서 무대라는 제약을 완전히 깨부수고, 관객에게 그야말로 무대 너머, 손 닿을 수 없는 곳의 프리지아를 선사하는 듯 극의 완성도를 극한으로 높였다.
1) 이 극은 2024 남산소리극축제 메인 공연 중 하나이다. 메인 공연은 크라운해태홀 한 곳에서 진행되며, 네 개의 공연이 사나흘 정도의 간격으로 연달아 무대에 오른다. 무대를 하나의 극이 독점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그 말은 바꿔 말하면 무대에 특정한 조형물을 설치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극의 의미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수월한 연기를 위해서 필요한 장치가 한둘이 아니다. 그것을 이 극에서는 빛과 소품 그리고 배우님들이 직접 열연하시며 해결했다.
2) 빛으로 감옥을 표현하거나, 긴장감을 부여하거나. 이런 방식은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활용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빛의 활용은 이 극에서 항일 투쟁의 의미를 부여하며 찢었던 일장기로, 큰 백색의 종이에 천장 좌우에서 붉은색 조명 두 개를 쏘아서 필연적으로 ‘무대에 내려놓았기에 평면적일 수밖에 없는 소품’을 조명을 통해서 입체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무대 뒤편 중앙에는 배경 디스플레이가 하나 있었고, 이 또한 분위기나 상황에 맞게 적절히 사용하여 극에 더더욱 집중할 수 있게 했다.
3) 앞서, 무대에 며칠 후에는 곧 다른 극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기에 무대에 무언가를 설치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였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시대 배경 변화 및 상황에 따른 변화를 무대에 무언가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것을 시대상을 보이는 포인트 소품을 아주 적절히 활용하여 관객의 극 이해도를 높였다. 어쩜 저렇게 소품을 잘 선정했을까, 관극 내내 생각했을 정도였다.
4) 마지막으로 배우님들의 열연이 정말 빛났다. 기차의 움직임을 기차 없이, 배우님들이 재현하는 등에서도 대단히 놀랐었다. 소리하는 배우님들의 체력이 대단하다는 뜻에서였다. 무대를 계속 뛰고, 연기하고. 소리만 하시는 게 아니라, 여러 역할을 쉴새 없이 하시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게 보였다.
한글을 배우는 장면에서 무대에 선 배우님들이 자신의 몸으로 한글의 자음을 만들어서, 극 중 인물이 한글을 배우는 장면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표현했을 때는 정말 경악하고 말았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배우님들이 고루고루 무대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식을 떠올릴 수 있단 말인가!
더불어, 극에서 ‘ㄱ회’의 설명 당시, 주요 간부가 몸으로 ‘ㄱ’ 자음을 만들어 (무대 위에서 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 각 획이 교차하여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방식의 표현 또한 매우 놀라웠다. 아주 단순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 모션에서 시간의 흐름과 각 항일 조직의 연대 그리고 그들의 방향성까지 한데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4. 이토록 놀라운 극의 완성, 내가 이렇게 감탄하며 관극할 수 있던 데는 당연히 한마음 한뜻으로 이 극을 만든 제작자님들에 더해서, 무대에서 약 90분을 쉴새 없이 뛰어다닌 배우님들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1) 판소리의 특성인 것일까. 이 지점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배우님들이 소품 착장 등의 사유가 아닌 이상에는 대부분 무대에서 자리를 지키셨다. 그래서 배우님들이 다른 분들 소리하실 때 추임새 넣는 모습이나, 배우님들 스스로 극에 동하여 눈물 훔치는 모습을 함께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나는 좋았는데 (나는 배우님들의 이런 인간적인 면모가 좋다.), 배우님들은 너무나 힘드시지 않았을까. 소리하는 시간, 연기하는 시간 이외에도 무대에서 계속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자리를 지키셔야 했었다. 약 90분의 러닝타임, 어떻게 본다면 배우님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연기하신 것과 다름없었다.
얼굴 정돈할 시간조차 없으셨을 텐데, 누구 하나 음이 이탈하기는커녕 나 혼자서 조마조마하며 무대에서 뛰실 때 다치지 않으실까 걱정하던 마음이 우스워질 만큼, 그야말로 완벽한 연기를 보이셨다.
2) 심지어 모두 다른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소리함에 있어서 어우러진다는 사실이 너무나 대단했고, 다른 목소리들이 하나의 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마치 화음이 쌓이는 듯 소리가 풍성해져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물론, 실제로도 화음 구간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구간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소리가 풍성하다는 생각을 잠시도 감출 수 없었다.
3) 더불어 자기 파트가 아니어도, 연기에 몰입하여 반응을 보이셔서 좋았다. 이런 부분은 내가 뮤지컬 렌트에서 무척 인상 깊게 본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솔의 기억>에서도 배우님들이 다른 배우님들의 연기나 소리에서 각자의 반응으로 무대 곳곳을 채우셔서 극을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온 힘을 다해 펼친 이화SORI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솔의 기억>을 통해서 아름다운 소리에 담긴 우리 민족의 아픔 속 세대의 화합과 연대를 볼 수 있어서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부디 또다시 무대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