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 하나 떨어져서 인생 확 뒤바뀐 사람의 일대기가 여기 있습니다
2024.05.18. 여설뎐: 싸우는 여자들의 소리, 방탄철가방 <배달의 신이 된 여자 - 배달순>
관객을 웃기고 서사를 전하고 인물을 구분하고 동작을 소화하고 감동을 전하면서 절정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체 과정을 혼자서 해낸다는, 그야말로 마스터피스를 이룩해내신 정상희 명창님께서 심지어 우리 민족의 아픈, 해결되지 않은 역사인 518을 너무나 절절하게 풀어 주신 극이었다.
모든 극이 제작자가 생각한 의미를 담았지만, 나는 이 극을 보면서 웃고 울고 감동하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이 역사 속에서 너무나 화가 나서 낯이 뜨거워지고 마음에 울분이 차서 도저히 잠들지 못하고 가슴 들끓는 시간을 보냈을 정도로 극에 동화되어 관극했다.
나는 대체로 한 줄 요약과 같은 총평을 기나긴 리뷰의 시작에 기재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다. 대신, 앞서 전할 말이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천재의 극이니까 제발 봐. 기회가 있을 때, 부디 그냥 보시길 바란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 않아도 된다.
일단, 기회는 흘러갔다. 그러니 다음의 기회가 온다면 친구들과 손잡고 그 무대를 꽉 채우길 바란다.
무대를 장악할 능력이 차고 넘치는 정상희 명창께서 여러분을 웃기고 울리다가 어느새 우리의 역사 속으로 모두를 휙 이끌어서 끝나지 않은 현실을 여러분에게 일깨울 것이다.
1. 소품
1) 자전거
배달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만큼, 당연히 무대에서는 자전거라는 소재가 자유자재로 사용된다. 지금은 오토바이가 배달에서 주요 수단이나, 그런데도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배달하는 사람도 있다고 안다.
하물며 1980년대는 어땠겠는가.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만큼, 배경을 반영하는 자전거가 무대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명창께서는 자전거를 끌고 움직이시면서 소리를 하시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서 소리하시기도 한다. 자전거를 타고 무대를 종횡무진 움직이시면서도 무대를 안정적으로 소화하신다.
2) 디스플레이
판소리라니. 한국적인 정서라고는 하지만, 현대인들에게는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연극이나 뮤지컬 등은 그래도 익숙하다. 그런데 판소리라니. 너무나 멀다. 우리가 과연 공감할 수 있을까? 과연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을까?
정말 그렇다. 그런 장치가 곳곳에 있다. 소위, 현대인들에게 ‘오그라드는’ 장면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명창께서 그마저도 능청스럽게 소화하신다. 더불어, 극의 재미를 배가하기 위해서 무대의 뒤편에 배치된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일반의 회상이나 장면 연계 등에서 적절한 비유에 과장과 예기치 못한 포인트로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남산 소리극 축제의 메인 공연 중 세 개의 극을 보았는데, 각 공연이 무대 뒤 디스플레이를 한정된 무대의 확장을 위해서 잘 활용했다. 그런데 배달순에서는 이를 극대화한 느낌이었다. 배경 설명, 인물 설명뿐만 아니었다.
명창께서 무대를 혼자 채울 수 있지만, 관객에게 더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위해 제작자분들께서 요소마다 신경 쓰신 느낌이었다. 그 덕분에 약 80분의 러닝 타임에서 잠시도 아쉬운 시간이 없었다.
3) 장꾸 모먼트
소위, 드립이라고 해야 할까. 밈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고민을 했는데, 결국에는 무언가를 그대로 카피해서 무대에 올렸다기보다는 어떤 유행 지점을 극에 어울리게, 그러면서도 관객의 흥미를 돋우는 방향으로 잘 살렸다는 생각이어서 항목을 이렇게 썼다.
특정 소품 하나에 한하지 않고, 소품의 활용이나 이야기의 전달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배달순의 배달 경연에서의 수상 장면이나 사랑과 우정 사이의 갈등 등의 장면이 우리가 익히 본 컨텐츠 어디선가 본 장면 같으면서도 배달순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이 살아있어서…. 진짜 제발 이 극 좀 너무 다시 보고 싶다. 미치겠다.
4) 의상 등
현시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레트로풍의 의상이 당시의 느낌을 배가했다. 중간에 명창께서 당시의 학생 모자를 쓰고 나오시는 장면에, 관객석에서는 작게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간단한 소품 하나로도 역할을 자유자재로 오가실 수 있는 명창의 능력이 잘 드러났다.
5) 철가방
배달이라는 소재에서 앞서 나온 자전거라는 소품에 더해서 철가방이라는 소품은 아마도 절대 빠질 수 없는 소품이리라.
명창께서 처음에 관객석에서 ‘능청왕’의 모습으로 무대로 오르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날 정도인데. 이걸 또 못 본다니. 재연, 삼연은 대체 언제 볼 수 있는 걸까. 화가 난다. 좋은 공연은 영원하지 않아. 볼 수 있을 때 봐야 한다.
하여간 그때 등장하시면서도 철가방으로 조명을 화려하게 반사하시면서 등장하시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무대에 설 때 배우들이 조명을 반사할 수 있는 아이템을 잘 착용하지 않는다고 아는데, 오히려 명창께서는 그리고 극에서는 철가방을 통해서 무대에서 조명을 적극적으로 반사하면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하고, 배달이라는 영역에서 우리의 주인공 배달순이 얼마나 출중한 능력을 갖췄는지 보여 준다.
관극 후 시일이 흘러서 정확하지 않지만, 배달순은 자전거에 철가방 여섯 개인가를 매달고, 서른여섯 그릇의 짜장면을 배달할 수 있다고 소리하는 대목이 나온다. 무대에 그만큼의 철가방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철가방을 가지고도 명창께서는 배달순의 능력을 화려하게 보이신다.
2. 극
1) 흐름
등장부터 범상찮않던 배달순은 영웅적 면모를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성장 과정 그리고 중심 사건까지 관객을 열정적으로 이끈다. 주체가 되기도 하고, 해설이 되기도 하고, 잠시 다른 인물로 극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대단하다고 느낀 부분 중 하나는 명창께서 혼자 극을 이끄시는데, 이야기의 이해가 어렵지 않았다. 극의 이해에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인물의 얼굴이고, 이 인물이 무슨 말을 하느냐,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극 또는 극단에는 얼굴이 다양해야 한다고 안다.) 말이 굳이 구어적 발화가 아니더라도, 행위라고 해도 크게 차이는 없다.
근데 명창께서는 극의 흐름상 중요한 포인트가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분명히 짚으셨고, 배경과 역사적 흐름을 얼추 알기에, 이후에 이런 요소가 어떻게 작용할지 대강 짐작할 수 있어서 무척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극을 보았다.
재미있게 극이 흘러가는 와중에 분명 나중에는 이런 지점들이 반전으로 작용하겠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부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광주로 이사를 떠난 애경이. 육군 사관학교를 다니는 남자. 평야반점인 줄 알고 취직했는데, 사실은 ‘ㅇ(이응)’이 떨어진 ‘평양반점’에 배달순이 취직하게 된 점이라든지.
그런데 굉장히 놀라운 부분은 예상이 예상대로 작동한다는 점이 재미를 반감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역사적 비극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척수쯤 새겨진 소재로 절절하게 공감을 이끌고 눈물을 빚는다는 점이다.
2) 한국적 소재
앱 배달의 민족에서 이런 카피를 한동안 사용한 적이 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달의 민족.
이 극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익히 아는 이 메시지의 의미가 뭘까. 최근 사전을 들고 다니는 듯 자주 검색하는 나는 국어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아보았는데, 굉장히 간단한 결과가 나왔다. 우리 민족을 이르는 단어라고 한다.
극에서는 ‘배달’의 동음이의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화합을 추구하며, 한민족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인류애를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며, 그야말로 ‘배달의 신이 된 배달순’을 그린다.
배달이라는 소재를 극의 끝에서 이렇게 해석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배달순이 한 번에 서른여섯 그릇까지 배달할 수 있는 짜장면 또한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국적 소재로 활용하여 극의 감동을 끌어 올렸다.
짜장면은 ‘자장면vs짜장면’ 논쟁이 오랜 화제였을 만큼 중식을 넘어서 완전히 한국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 중 하나라고도 얘기하는 음식이다.
심지어 그 당시 짜장면이 인기 외식 메뉴 중 하나라고 당시를 그린 컨텐츠들에서도, 더불어 극에서도 그린다. 그렇다 보니, 극 말미에서 죽음 직전에 짜장면을 먹고 싶어 하는 학생들과 이들을 위해서 짜장면을 전심전력으로 배달하는 배달순의 모습이 우리 민족을 지키고자 애를 쓴 이들의 아픈 역사를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배달과 짜장면이라는 소재가 가볍고 간단한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가벼운 극의 시작과는 정반대로 극의 끝에서 이토록 다양한 의미를 담아서 풍성하게 현시대적 아픔을 녹여서 극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3) 호응
앞서, 극을 여러 방식으로 재미있게 풀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눈이 현란해지는 조명을 과감하게 사용하거나, 사랑과 우정 사이의 선택을 줄임 표현 등을 사용하면서 십 대의 고민을 재미나게 보이기도 했고, 철가방이라는 번쩍거리는 소품으로 무대를 향하는 조명을 관객에게 직접 반사하면서 관객의 호응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는 대체로 조용한 관람이 일반적인 예절로 통용된다. 하지만 배달순에서는 웃음과 박수는 기본, 다양한 반응들이 무대와 관객 사이에서 계속 오갔다. 지나치다고 생각한 지점도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극에 더 몰입할 수 있고 무대를 보는 타자로서의 관객이 아니라, 이 무대에서 재현되는 역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호응도 사실은 내가 호응해도 된다는 허락 또는 눈치가 보여야 하는데 무대에서 다행히도 신호와 관객이 참여할 틈을 계속 주었다. 결론은 관객이 이 극에서 타자로 자리하는 게 아니라, 역사를 공유하는 일원으로 함께할 수 있게 극이 만들어져서 더더욱 인상적이고 좋았다.
4) 우회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만큼, 아픈 역사적 사실이 난무한다. 극은 이 비극을 모두가 무대에서 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한다. 공수 부대를 개고리 부대로 표현을 바꾸고 이를 무대의 디스플레이에서도 개구리로 표현하는 등 극의 확장성, 더욱 많은 사람에게 이 극이 도달할 수 있도록 일부 표현을 돌려서 전하면서도 역사가 갖는 본질은 훼손하지 않았다.
역사적 현실을 옮기는 일은 그게 어떤 방식이든 여러 관점으로 비난에 휩싸이기 쉽다.
심지어 이번에 관람한 배달순은 정상희 명창 한 분께서 무대를 온전히 감당하셨기에 더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공연 중 한 명만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이 섞였어도, 이 극은 제대로 끝맺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극의 제작자가 극을 올리고 싶어도. 결국에는 무대에서 연기하고,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관객들의 앞에서 연기를 선보이는 사람은 오로지 배우이며, 그렇기에 나는 정상희 명창께서 정말 대단한 선택 그리고 엄청난 연기와 소리를 펼치셨다고 본다.
러닝 타임 내내 모든 반응을 혼자 온전히 맞으며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잠시의 흐트러짐 없이 극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온 힘을 다하셨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극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정상희 명창님의 목소리에 한이 참 많이 서렸다는 생각이었다. 극과 목소리가 조금 안 어울리지 않나, 초반에는 그렇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점점 극이 흘러갈수록 그런 생각은 완전히 날아갔고, 명창께서 가진 그 목소리와 에너지가 우리 역사의 아픔에 절절히 빠져드는 엄청난 힘이 되었다.
부디 재연과 삼연, 제발 주기적으로 꾸준히 무대에서 뵐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오늘도 길어진 후기를 맺는다.